주저리 주저리 쓰는 글을 좋아한다. 특정 주제를 가지고 쓰는 글은 생각을 정제하는 데 오래 걸린다. 그런 글은 오랫동안 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늘은 아무 말이나 내뱉고 싶다. 오랜 친구와 수다를 떨듯이. 나와 대화를 하듯이.
주말에는 책을 몇 권을 번갈아 읽었다. 조 디스펜자의 <브레이킹 당신이라는 습관을 깨라> 책을 읽었고,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순간의 나>를 읽었다. 그리고 짬짬히 미래의 골동품가게라는 웹툰을 정주행 했다. 생각해 보니 이 패턴은 주말만 그런 게 아니고 한 몇 주간 지속되는 패턴 같다.
조 디스펜자의 책은 이번 처음 읽는 책이고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은 몇 번째 정독인지 모르겠다. 요사이는 새로운 책보다는 읽었던 좋은 책을 여러번 읽는 것이 낙이되었다. 책이란 것은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번 정독하는 과정에서 매번 새로운 것을 느낀다. 밥 프록터가 그랬다. 같은 책에서 다른 것을 매번 느낀다면 그것은 당신이 더 깊어지고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어떤 책은 잠재의식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읽으라고 했다. 그 책의 내용에 어떤 감응을 받았다면 그것이 내 삶이 될 때까지 읽으라고.
그렇게 해서 간간히 생각날때마다 읽는 책은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과 마이클 싱어의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그렇다. 내적 성장과 자유, 치유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관찰하는 나'가 깨어나 무의식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횟수가 늘었다. 이제는 굳이 명상 시간을 길게 두지 않더라도 순간순간 깨어 있으려는 노력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조차 되지 않는다.
어제는 샨티출판사에서 하는 구르지예프 무브먼트 워크숍에 다녀왔다. 구르지예프는 러시아의 철학자, 신비주의, 영적 스승이자 작곡가라고 한다. (나도 모르는 사람이다. 나무위키가 알려줬다.) 국내에는 몇 권의 책들이 있는 것 같고, 애니어그램에 대한 구르지예프의 생각에 대한 글들을 블로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의식에 대해 연구했던 사람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그가 누구인지는 각설하고, 구르지예프가 만들었다는 신성무 공연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일어서 공연에 다녀왔다.
이 공연은 특이하게도 춤과 음악을 의식을 깨어있기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무대위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 객석에 있는 관객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온갖 종류의 인상(impression)이 내면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관찰하고, 그것을 관찰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다시 관찰하는 것이다. 공연이 아니라 명상의 과정 같다.
10분 정도 늦었지만 깨어 있기 위한 노력을 해봤다. 처음에는 춤과 음악을 분석하려는 마음이 일어났다. 분석하려는 생각이 일어나자 머리 쪽이 뜨겁고 턱에 힘이 들어 간다. 점차 이를 인식하자 분석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일정한 리듬과 반복적인 동작에 따라 내면의 에너지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순간 순간 다른 생각이 드는 것도 관찰한다. 다시 현존으로 돌아와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생각이 끼어들었다가 다시 현존하는 상태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을 관찰한다. 무대가 끝날 때쯤에는 내면이 고요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이유 없이 울적했던 마음,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마음, 지긋지긋하다는 생각, 지루함이 눈녹듯 사라지고 생각도 없는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유없이 울적한 마음, 이유 없이 화가 나는 마음, 지긋지긋하다는 생각, 다 하기 싫다는 마음, 지루함을 관찰하는 여유가 생겼다. 이 마음과 관찰하는 나 사이에 공간이 생겼고, 공간 덕에 나는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이 마음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감정이 강하다는 것은 그 충동에 즉흥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지만 이 마음은 그냥 내 안에 있었다. 잠시 음악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사라지는 마음 정도로 미약한 상태였다.
하지만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음은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살아온 '나'였다. 중독적인 마음이었다. 변화를 갈망할때 내가 주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신경망일 것이고, '나'라는 정체성으로 굳어진 잠재의식일 것이다. (조 디스펜자의 책에 따르면)
무엇인가를 시도할 때 이 마음이 한계를 만들었다. '해서 뭐하냐, 다 지긋지긋하다, 다 싫다' 저항하고 합리화하고 변명한다. 하고자 하는 일에 내맡기지 못하고, 깊이 빠져들게 하지 못하게 하고 이 마음이 의식과 주의를 잡아끈다.
변화를 위한 첫 단계는 '인지하기'라고 했다. 어제 오늘 나는 이 마음과 그냥 함께 있어 준다. 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지속적으로 관찰 중이다. 이 마음이 만드는 감각도 피하지 않고 느끼고 있다.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나는 회피하지 않을거야.' 라고.
'나는 나를 알아갈 것이고, 내가 무엇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알아낼 거야. 앎의 한가운데서 지켜보고 고요히 작별을 하고, 삶에서 변화의 시기에는 이 마음이 아닌 다른 마음으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경험할 거야. 삶의 기쁨을 노래하고,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거야. 나는 나와 통합될 것이고 더 고양될 것이며, 삶이 주는 깊은 의미를 깊게 느끼며 살아가게 될 거야.'
그러기 위해 친해지자. 내가 만들어온 '나'가 하는 말을 들어줄거야. 보이는 나와 진짜 나는 통합될 것이고 그 간격은 없을거야. 삶은 꾸밈이 없고 진실되고 평온할 거야.
오? 이 글을 쓰는 순간,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진짜 월요일이 밝았다.
자신과의 진실되고 평화로운 만남이 쭈욱~ 바라는 대로 될 거에요~ ;-)
답글삭제저도 교차 독서 즐기는데요~ 영적 충만으로 오늘도 최고의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어제 오늘 나는 이 마음과 그냥 함께 있어준다." 매번 회피하느라 바쁜 저에게 울림을 주는 멘트로 와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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