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멀쩡하던 애인데, 왜 또 열이 오르는 거죠?" 중년의 누이가 외쳤다. 알 수 없다는 듯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담당 의사를 붙들고 말을 이어갔다. "어제 머리가 너무 감고 싶다고 해서 머리만 감겨줬어요, 열이 다시 날 이유가 없는데", 동생은 힘겨운 듯 숨을 들썩이며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난 후 다시 저녁 면회 시간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안타까운 듯 중환자실 문을 바라보며 어깨를 들썩이는 누이는 중얼거렸다. '아이고, 간단한 수술이라며 잠깐이면 된다며'
한 달 전 미국에 살던 동생은 간단한 복강경 수술을 하겠다며 한국을 방문했다. 별 대수롭지 않게 잠깐 치료받고 돌아가면 될 거로 생각했던 누이는 병간호를 자처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문제 되었던 부위는 말끔하게 치료 되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누이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고 한다. "그날 밤 같이 있었어야 했는데, 동생이 집에 들어가 보라며 나를 떠밀지만 않았어도" 누이는 중환자 대기실 의자에 기대어 동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술을 잘 마치고 일반 병동으로 옮겨지던 날 동생은 혼자였다. 동생은 수술 후유증으로 폐부종을 진단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에서의 한 달간의 생활을 마치고 호전되어 다시 일반 병동으로 간 날, 동생은 머리가 감고 싶다고 머리를 감겨 달라고 50이 넘은 누이를 졸랐다.
"한 달 만에 일반 병동으로 나왔고 아이들도 면회하고 싶어서 떼를 썼나 봐요. 그날 머리를 감겨주고 씻어 주고 밝게 웃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안도하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그날 밤 열이 오르고 폐렴이 다시 시작된 거예요"
중환자실의 생활은 환자도 보호자도 모두 고되다. 하루에 두 번뿐인 짧은 면회에서 보호자는 환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그저 빨리 회복되어 중환자실을 나오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제 동생 잘생겼죠? 누이는 동생의 가족사진을 보여줬다. "다른 가족들은 면회 안 오세요?"라는 질문에 누이는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이혼했어요. 아이들은 전 부인이 키우고요. 헤어지고 미국에 가서 재혼했죠. 그런데 아이들도, 재혼한 동서도 얼굴 코빼기도 안 보여요. 동생이 쓸쓸히 갈까 봐 두려워요"
짧은 면회가 끝난 후 누이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동생이 이제 놓아 달래요. 더 이상 힘들다고" 그리고 그날 누이의 마지막 면회를 끝으로 더 이상 두분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늘나라에서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할거에요. 마음의 짐을 내려 놓으세요"
- 중환자실 보호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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